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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바시특강]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간다, 죽음 삶 태도 일상 의학

오늘의 내용은 죽음과 삶에 대한 태도에 대해서 말해보려고 한다.

 

영상 초반에 박사는 법의학에 대해서 설명한다. 법의학이라는 직업은 "다양한 형태의 죽음을 부검하는 직업이다"라고 이야기한다. 여기서 부검은 " 사망원인과, 사망의 종류를 정확히 알기 위해서 사망 후에 이루어지며, 그 조직을 여러 첨단 과학 기계를 이용해서 검사를 하는 것을 총칭해서 부검이라고 한다" 일반인들은 흔히 부검은 "죽음이 타인이 관여한 것에 대한 타살 소견이 있거나, 죽음에 무언가 밝혀야 할 것이 있을 때만 이루어진다"라고 생각을 한다. 그러나, 법의학은 갑작스러운 죽음, 원인을 잘 모르는 죽음, 의료사고 같이 갈등, 법적 문제가 있는 죽음을 부검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다양한 스펙트럼에 대한 죽음을 보게 된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시작 전 이렇게 말한다. "죽음에 대한 태도가 바로 내가 현재의 살아가고 있는 삶의 지표가 된다는 것이다. 또한 이 박사는 들어가면서, 의문을 제기한다.

"어떻게 죽어야 하는가? Well-dying에 대해서..."

 

그러면서, 세 명의 사례자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한 학자의 이론을 통해, 죽음의 태도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첫 번째는 Natural acceptance, 즉 자연스러운 죽음의 수용, 다음으로는 Approach accptance 죽음은 삶의 중간과정이다. 마지막으로 Escape acceptance 죽음은 고통(삶)의 탈출이다. 세 명의 사례자의 각각의 죽음도 이 세 가지 중에 한 가지에 속하는 유형이었다. 현재 한국사회는 죽음에 대해 숙고하지 않고, 논의하지 않는다. 모두 숨기려고만 한다. 떳떳이 드러내지 못하는 사회, 법의학자는 말한다. 우리 한국인들이 죽음을 좋아하는 민족인가? 그렇지 않다. 90년대만 해도 우리나라는 자살률이 높은 나라가 아니었다. 그런데, 현재 한국은 OECD 국가 중 현재는 자살률 2위를 기록하고 있다. 리투아니아 라는 나라가 1위를 하고 있지만, 그 이전에 대한민국은 자살률 1위를 달렸다. 법의학자는 말한다. 왜 우리나라가 그렇다면 자살률이 높아졌는가? 왜 개인적 고통의 해방으로 죽음이라는 도구를 택하게 되었는가? 한국은 성공했다. 한강의 기적을 이룬 나라이고, 60초가 60/1로 쪼개져 열심히 일하고, 마치 언제 적 6,25 전쟁인지, 일제강점기를 치른 국가인지에 대하여 말하지 않는다면, 모를 정도로 나라가 부강해졌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그 치열함과 끊임없는 경쟁의 구도가 있다. 그 안에서 치여살아가는 사람들,

법의학자는 분명히 말한다.

"죽음에 대한 진지한 숙고가 없고, 논의가 없기 때문이라고.."

 

개인의 태도에 따라 죽음을 대하는 태도는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이제는 사회가 죽음을 사회적 문제로만 여기는 것이 아니라, 다같이 논의하고 숙고할 시점이다. 만일 죽음에 대한 논의와 숙고가 없다면, 대한민국의 일어나는 안타까운 죽음들은 끊임없이 일어날 것이다. 대한민국에 현재 필요한 것은 죽음에 대한 논의를 할 수 있는 장, 그것이 일어날 때, 우리는 그 스토리들을 듣고, 위로하고, 다시 한번 살아갈 수 있는 따뜻함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오늘 이야기를 풀면서, 죽음 이라는 예측할 수 없는 것 앞에 두렵지만, 혼자 있는 것이 더 두려움이 되는 사회! 그 앞에 모든 것을 내어 던지고, 살려달라는 부르짖음이 바로 자살이 아닐까, 어쩌면 가장 살고 싶었던 사람들이 아닐까. 끊임없는 절규가 그 부르짖음이 허용되지 않는 사회 속에서 지금 자신이 생각하는 것은 나쁜 것이라고만 끊임없이 생각했던 사람들. 그리고 자학하고, 자신을 원망했을 사람들, 그 사람들에게 따뜻한 위로 한마디는 왜 허락되지 않았던 걸까? 이 무한 구도 경쟁의 시간에 우리는 살아가고 있고, 살아가야 한다. 얼마 전 어벤저스 엔드게임을 보며 느꼈던 것, 인간이라는 유한한 존재의 하나 됨이 무한한 타노스라는 존재를 결국은 무너뜨린다는 것이다. 혼자라면, 연약하고, 혼자라면, 자학하고, 살아가지 못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둘이 되고, 셋이 된다면, 말이 달라진다. 우리도 혼자라고 말하는 누군가에게 나도 있다는 것을 알려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오늘의 포스팅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