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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바시특강] 미안하다는 고백의 힘

우리는 미안하다는 말을 형식적으로 참 많이 한다.

그 말이 그 사람한테 얼마나 큰 생채기가 될 줄 모르고..

그 미안하다는 말이 어떻게 형식적인지 아냐고 묻는다면,, 간단하다.

그 사람이 그 이후에 어떻게 행동하는지 관찰하면 된다.

미안하다고 했으면, 그 미안한 행동을 다시 하지 않으면 된다.

그럼 그 사과에 대한 진정성을 보여주는 것일거라고 생각한다.

오늘 세바시 특강을 통해서 미안하다는 고백의 힘,

진짜로 미안할 때 생기는 변화에 대해서 나눠보려고 한다.


#1. 일상에서 관계를 보호하는 가치

미안하다고 우리는 형식적으로 호은 그 순간을 모면하기 위한 대책으로 그 말을 선택하고 입 밖으로 내뱉는다. 그리고, 그 말에 대한 화살도 훗날 나에게 깨어진 관계로 다가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렇기에 인간들은 더욱더 관계에 대해 힘들어한다. 그런 말이 있다. 한마디 말로 천량 빛을 갚는다. 또한, 발 없는 말이 천리간다. 라는 말도 있다. 예로부터 우리 선조들도 말에 중요성에 대해서 속담을 통해서 끊임없이 말하고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시작 전, 강사는 이런 이야기를 던진다. 혹시나, 내가 상처 준 사람이 있는지? 아니면, 나에게 상처준 사람이 있는지? 생각해보라고 한다. 그러면서 이런 말을 한다.

 

그렇다면, 나는 그 후회하는 행동에 대해서 진심으로 다가가 용서를 구했는가?

그리고, 나에게 잘못한 사람은 나에게 다가와 진심으로 용서를 구했는가?

건강하게 용서를 구하지 못했다면, 왜 하지 못했는가?

 

#2. 죄책감을 대하는 우리들의 습관

먼저 생각의 흐름이 다르다고 했다. 우리는 상처를 주고도 그 상처를 준 상황을 전혀 인식하고 있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상대방이 "나 그 때 그렇게 해서 상처를 받았어" 라고 했을 떄 "내가? 언제그랬지?" 라고 반응한다는 것이다. 즉, 상처를 입히고도 상처를 입힌지도 인식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다음으로, 자기 혐오와 자기 비난에 빠져버린다는 것이다. 그 때 나는 왜 그랬지? 아버지에게 준 상처가 계속해서 나를 옥죄어가는 한 청년의 이야기를 하며, 그 때 내가 조금 더 .. 라는 말을 덧붙인다. 마지막으로 합리화하는 태도이다. 합리화는 "내가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주저리 주저리 설명한다"는 것이다. 그 상대방에게 사과를 한다고 하면서, 자신이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서 설명하는 나의 모습이 보이는 것이다.

 

 

 

 

 

 

 

 

 

 

 

그렇다면, 건강한 사과는 무엇일까? 에 대해서 박사는 이렇게 이야기 한다. 늘 매일의 삶 가운데 나 때문에 상처를 받은 사람이 있을까? 반추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마치 개구리가 휙 던진 돌에 맞아 죽듯이, 정말 예상치 못한 행동도 상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내가 정말 사과를 하고 싶다면, "내가 ~래서 ~어" 가 아니라, 그 상대방이 상처 받은 마음에 중심을 두고, 사과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상대방은 그 때 왜 그렇게 행동할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부분에 관심이 있지 않다. 그저, 그 때 내가 ~해서 네 마음이 ~ 아팠겠구나! 라는 말이 필요한것이다. 충분한 생각과 그 사람에 대한 공감! 그것이 필요한 것이다. 마지막은 두번째랑 연장선속에서 논리적으로 사과를 하지 말아야 한다. 내가 왜 그렇게 했는지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 때 우리는 이렇게 말해야 한다.

 

내가 그 때 미안했어, 이제 그렇게 하지 않을게

그러니, 나를 좀 도와줘, 내가 노력해볼게.

이렇게 말하고, 마지막으로

정말 달라진 행동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박사는 마지막으로 당부한다.

이제는 미안하다고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라고..

그리고 자신에게 잘못 한 사람도

용서해주라고..

그리고 아래 문구를 인용한다.

 

 

 

 

"외부를 바라보는 사람은 꿈을 꾸지만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는 사람은 깨어난다"

 

 

 

 


이번 포스팅을 쓰면서, 내 의식의 흐름은, 내가 정말 미안한 사람, 내가 실망시킨 사람들이었다. 내가 나를 생각하고, 나를 사랑하기 위해 그들은 나에게 상처 받아야 했는가? 단지, 나를 나로 인정해주지 않아서.. 어쩌면 그게 이유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지금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이해받기 위해서 살아가지도, 누군가를 이해시키기 위해서 살아가지도 않는다. 그 때에 나는 어렸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미 그들은 상처를 받았다. 그 상처에 대한 사과가 나는 있었는지. 적어도 그들의 마음에 대해 생각해보았는지 물었다. 나의 방법대로 해결하고는 그저 나는 사과했다. 라고 섣불리 판단해버리지는 않았는지 돌아보게 된다. "외부를 바라보는 사람은 꿈을 꾸지만,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는 사람을 꺠어난다" 라는 저 말처럼! 우리도 이제는 진짜 사과를 할 차례이다. 나도 이 글을 쓰는 순간 한 친구에게 약속을 요청했다. 물론 약속에 응해줄지는 모르지만,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도, 그리고, 내가 그렇게 사과하고, 변화되는 모습을 보여줄 때, 다른 나에게 등돌리고 상처준 누군가도 나에게 사과를 할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의문을 던지며 포스팅을 마친다.